본 기사는 국민일보의 단독기사로 더코리아에서는 보도의 용도가 아닌 권리금 기사내용의 참고용으로 발행하지 않음.
국민일보 | 입력 2014.01.13 02:35
최준혁 (55) 씨는 서울 홍익대 앞에서 곱창집을 하고 있다 . 곱창 장사 25 년에 특유의 냄새를 말끔히 없애는 노하우가 생겨 단골이 많다고 한다 . 다른 데서 장사하다 2011 년 3 월 홍대 앞의 아담한 2 층 건물로 이전했다 . 보증금 1 억원에 월세 700 만원 . 예전 상인에게 권리금 2 억원을 줬고 1·2 층 인테리어에 1 억 7000 만원을 들였다 . 중심 상권에서 ' 승부 ' 를 해보자고 상당한 빚을 얻어 투자했다 .
#" 내가 나가면 건물주는 앉아서 3 억원쯤 번다 "
계약 기간은 2 년이었다 . 상가 임대차 계약은 통상 1 ∼ 3 년마다 갱신하며 임대료를 조정한다 . 재계약을 앞둔 2012 년 11 월 건물주가 갑자기 이 건물을 팔았다 . 최씨는 팔린 것도 몰랐다가 새 건물주로부터 계약 기간이 끝나면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 자신이 직접 여기서 장사하겠다는 것이었다 .
이렇게 나갈 경우 최씨의 권리금 2 억원은 고스란히 증발한다 . 다음 임차인에게 받아야 하는 권리금은 건물주가 " 내 건물 내가 쓰겠다 " 하는 순간 ' 폭탄 ' 으로 돌변한다 . 법에 명시되지 않은 임차인 간의 거래 관행이어서 현행법상 건물주에겐 권리금을 물어줘야 할 아무런 책임이 없다 .
최씨는 " 내가 나가면 새 건물주는 앉아서 3 억원을 손에 쥐게 된다 " 고 말했다 . 어떤 상인이 장사를 잘해서 그 점포 , 그 거리를 찾는 이가 많아지면 다음 상인은 장사하기가 한결 수월하다 . 최씨는 그 무형의 가치를 인정해 권리금을 주고 점포를 넘겨받았다 . 2 년간 장사하며 손님이 더 늘어 지금은 권리금 3 억원에도 들어오려는 상인이 있다 . 새 건물주는 이 3 억원짜리 가치를 공짜로 차지하게 됐다는 뜻이다 .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에게 5 년간 계약갱신요구권을 준다 . 그런데 조건이 있다 . 환산보증금 ( 보증금 +( 월세 ×100)) 이 일정 기준 ( 서울 4 억원 , 광역시 2 억 4000 만원 등 ) 이하인 작은 점포 임차인에게만 적용된다 . 최씨는 이 기준을 초과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불과 2 년 만에 명도소송 ( 점유하고 있는 점포를 돌려 달라고 건물주가 제기하는 소송 ) 을 당했다 .
# 권리금은 홍길동 같은 돈 … 내 자식은 맞는데 호적엔 없어
그렇다면 ,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적용되는 환산보증금 기준 이하의 점포 권리금은 얼마나 안전할까 .
신가람 (32) 씨는 2012 년 11 월 홍대 앞 후미진 골목의 단독주택 반지하 18 평 공간을 빌려 ' 뿅뿅뿅 ' 이란 주점을 차렸다 . ' 신가람 밴드 ' 의 보컬로 인디음악을 해오다 작은 문화공간을 만들어 보려고 시작했다 . 보증금 3000 만원에 월세 90 만원 . 환산보증금은 3000 만 +(90 만 ×100)=1 억 2000 만원이다 . 계약 당시 기준인 3 억원 ( 법이 개정돼 올해부터 4 억원이 됐다 ) 에 못 미쳐 법의 보호를 받는다 .
하지만 신씨는 지난해 9 월 명도소송을 당했다 . 건물주는 점유이전금지 가처분신청을 함께 냈고 법원이 받아들여 지금 그의 점포에는 법원 집행관이 가져온 양도 금지 ' 딱지 ' 가 붙어 있다 . 이 점포를 신씨가 다른 상인에게 넘길 수 없다는 , 다시 말해 권리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는 표시다 .
신씨도 건물이 팔린 경우였다 . 개업 6 개월 만에 부동산에서 건물주가 바뀌었다고 연락이 왔다 . 새 건물주는 월세를 150 만원으로 올리고 , 옛 건물주 동의 아래 설치한 조명과 간판 등 외부 구조물 철거를 요구했다 . 거부하자 구조물이 건축법에 저촉돼 계약 해지 사유라며 명도소송을 낸 것이다 .
신씨는 가정집이던 곳을 6000 여만원 들여 점포로 개조했다 . 전에 장사하던 상인이 없는데도 권리금 1000 만원을 내야 했다 . 중개한 부동산은 이를 ' 바닥권리금 ' 이라고 불렀다 . 개업 당시 그 골목엔 ' 뿅뿅뿅 ' 을 포함해 점포가 2 개뿐이었다 . 밤이면 가게 불빛이 없어 캄캄했던 곳인데 지금은 카페와 주점 등 10 개 넘게 들어섰다 .
이 골목 상인들은 대부분 개업 전에 신씨 가게를 답사했다 . 주말엔 빈 자리가 없고 평일에도 손님이 이어지는 걸 보고는 여기에 터를 잡았다 . 신씨의 투자와 영업이 창출한 골목상권 , 그 가치를 인정받을 유일한 방법이 권리금인데 그는 그럴 기회를 박탈당하게 됐다 .
" 권리금은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 같은 돈이에요 . 분명 내 자식인데 호적에 없으니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해요 . 만약 ' 뿅뿅뿅 ' 을 지금 다른 상인한테 넘기면 최소한 수천만원은 권리금을 받을 텐데 … 건물주들은 ' 양도하게 해주겠다 ' 고 말만 하다 명도소송을 내곤 하죠 ."
# 임차상인 ' 권리금 ', 건물주의 ' 권리 ' 가 되다
" 건물주들이 ' 양도하게 해주겠다 ' 고 말한다 ." 여기서 ' 양도하게 해주다 ' 는 다음 임차인에게 권리금 받고 점포 넘길 기회를 허락한다는 뜻이다 . 임차인이 권리금을 받느냐 못 받느냐는 건물주 마음에 달려 있다는 , 그러니까 권리금 폭탄의 스위치를 건물주가 쥐었다는 얘기가 된다 . 서울 종로구청 앞에서 중국집 ' 신신원 ' 을 운영하는 신금수 (53) 씨도 같은 말을 했다 .
그는 지난달 말로 임대차 계약 기간이 끝났는데 이달 들어 밤마다 가게에서 자고 있다 . 건물주는 점포를 빼라 했고 그는 권리금도 못 받고 나갈 순 없다며 맞섰다 . 환산보증금 기준을 넘어선 데다 18 년째 여기서 장사해온 터라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 건물주의 법적 조치도 끝나 언제든 집달관이 들이닥칠 수 있다 . 그걸 막아보겠다며 싸우는 중이다 .
신씨는 중학교 졸업하고 상경해 큰형님이 하는 중국집에서 배달부터 시작했다 . 짜장면 뽑는 기술을 배워 주방장이 됐을 때 분가해서 1995 년 이 가게를 차렸다 . 보증금 2000 만원에 월세 200 만원 , 권리금 1 억 3500 만원을 주고 들어왔다 . 형님과 친척들한테 1 억원을 빌렸다 .
장사가 신통치 않아 상인이 자주 바뀌던 점포였다 . 그런 곳에서 18 년을 버티며 많은 단골을 확보했다 . 권리금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는 속성이 있다 . 오래 장사했다는 건 그 점포를 약속장소로 삼았거나 , 거기서 잊지 못할 추억을 얻었거나 , 그 거리를 기억하는 랜드마크로 여긴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 이 점포의 지금 권리금 시세는 1 억 5000 만원이 넘는다 . 신금수씨는 2 년 전 점포 양도하고 나가겠다는 의사를 건물주에게 전했다고 한다 .
" 그랬더니 ( 건물주가 ) 월세를 700 만원에 맞춰놓고 나가라는 거예요 . 당시 내 월세가 320 만원이었는데 배 이상 올려놓으라는 겁니다 . 그게 안 되면 다음 상인과 계약을 해주지 않겠다는 거죠 . 누가 월 700 만원에 들어오겠어요 . 그렇다고 그냥 나가면 권리금을 못 받잖아요 . 하는 수 없이 눌러앉았죠 ."
그러고 한참 뒤 건물주에게서 내용증명이 날아왔다 . 계약 기간이 끝나면 자신이 점포를 쓰려 하니 비워 달라는 거였다 . ' 내 건물 내가 쓰겠다 ' 라는 권리금 폭탄 스위치를 눌러버린 것이다 .
# 상가 명도소송 1 년에 1 만 5000 건 … " 법대로 하면 어쩔 도리가 없다 "
권정순 서울시 민생경제자문관은 변호사다 . 서울시가 민생 대책을 총괄토록 신설한 자리에 공채로 발탁됐다 . 권리금을 비롯해 임차상인 문제를 풀기 위한 태스크포스팀도 주관하고 있다 . 얼마 전 울산에 사는 친척이 그에게 자문을 구해왔다고 한다 .
친척은 조그마한 피자집을 하고 있다 . 권리금 2000 만원을 주고 점포를 얻었는데 맛이 좋았는지 장사가 아주 잘됐고 단골도 많이 생겼다 . 환산보증금 기준 이하여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적용된다 . 법이 정한 보호기간 5 년이 지나자 건물주가 재계약을 거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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