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세상을 순하게 만드는 계절이다. 단단한 얼음을 사르르 녹이고, 겨울눈이 꼭꼭 숨겨둔 꽃봉오리의 고개를 들게 한다. 혹한을 밀어내고 고요히 찾아오는 봄은 분명 강하다. 깊은 잠을 떨치려 기지개를 켜듯 추위에 접어둔 여행 욕심을 깨우러 자전거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오랜만에 나선 길에서 이왕이면 봄볕에 비친 윤슬이라도 본다면, 활짝 얼굴 내민 꽃이 선물하는 향기라도 맡는다면 더없이 행복할 테다. 육지 깊숙한 곳까지 흐르는 바닷물과 그 위로 보석처럼 뿌려진 꽃길을 볼 수 있는 그린웨이로 향한 이유다.
그린웨이는 시흥시를 대표하는 자전거길이다. 갯골생태공원부터 물왕호수까지 약 7.5km 거리로, 아마추어 자전거 동호인이 느릿하게 달려도 1시간 이내에 완주할 만하다. 제방 위 농로에 조성해 자전거를 타면서 즐기는 전원 풍경은 덤이다. 심한 경사 구간이 없어 봄처럼 순한 길이이지만 농기계와 농사 차량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린웨이의 출발점은 갯골생태공원이다. 잔디광장과 캠핑장, 해수체험장, 탐조대 등을 두루 갖춰 시민에게 사랑받는다.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기 전, 갯골생태공원의 대표 볼거리를 둘러보자. 원기둥 모양으로 세운 높이 22m 흔들전망대는 공원 어디서나 눈에 잘 띈다. 전망대 정상에 오르면 공원과 주변 풍광이 한눈에 담긴다. 바람이 불면 이름처럼 전망대가 흔들려 아찔하다. 안전에는 문제없이 설계했으니 안심하고 경치 구경에 빠져도 된다.
전망대에서 본 풍경 가운데 공원 옆으로 흘러드는 바닷물의 곡선이 인상적이다. 갯골생태공원과 주변은 원래 소래염전이 있던 자리다. 내륙 안쪽까지 들어오는 바닷물이 뱀처럼 구부러진 모양을 한 경기도에서 유일한 사행성 내만 갯골이다.
다음으로 볼만한 장소가 염전체험장 옆에 있는 시흥 옛 소래염전 소금창고(경기등록문화재)다. 소래염전이 있을 때만 해도 40동을 유지했는데, 지금은 2동만 남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소금이 고가에 거래돼, 이 소금창고를 보물 창고라고 부르기도 했다. 소금창고를 지나 모새달다리 방향은 부드러운 흙길 위를 자전거로 달리는 재미가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린웨이 자전거 여행에 나설 차례다. 페달을 밟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관곡지에 닿았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문장가 강희맹이 사신으로 간 명나라에서 가져온 연(蓮) 씨를 처음 심은 곳이다. 이후 관곡지 관리는 강희맹의 사위 권만형에게 넘어갔으며, 지금도 안동 권씨 집안이 소유하고 있다. 너른 마당에 아담한 사각 연못이 있고, 물 한가운데 소나무 세 그루를 품은 인공 섬이 자리한다. 연꽃이 연못을 뒤덮은 여름 풍경을 보지 못해 아쉽다. 마당 높은 자리에 듬직하게 선 정자가 먼 데서 온 여행객을 지그시 내려다본다. 관곡지는 사유지라 주말에만 개방한다(10월~이듬해 3월 오전 10시~오후 5시 / 4~9월 오전 10시~오후 7시).
관곡지를 지나면 길은 보통천 제방을 따라 거의 직선으로 연결된다. 중간에 만나는 호조벌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농토가 황폐해져 굶주림에 고통받는 백성을 위해 바다를 막아 논으로 만든 땅이다. 조선 시대 행정기관인 육조 가운데 호조가 만들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자전거가 농로에서 벗어나는가 싶더니 금세 그린웨이의 종착지 물왕호수에 도착했다. 물가를 따라 만든 산책로는 자전거를 타고 통행할 수 없다. 잠시 내려 벤치에서 봄날의 한가한 시간을 누려보자. 물왕둘레길은 벚꽃으로 유명해 봄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붐빈다.
해마다 3~11월에 시흥시공영자전거대여소를 운영한다. 월곶역점 운영 시간은 오전 9시~오후 8시(월·화요일, 공휴일 휴무), 정왕역점 운영 시간은 오전 7시~오후 9시(토·일요일, 공휴일 휴무), 대여료는 없다. 1·2인용 자전거와 헬멧을 구비했다. 자전거를 빌리기 위해선 신분증을 꼭 지참해야 한다. 월곶역점과 정왕역점은 갯골생태공원에서 다소 떨어져 있으니 참고하자. 갯골생태공원에서도 공원 내 탑승이 가능한 전기차(3~11월 운영 / 15분 2000원), 다인승 자전거(3~11월 운영 / 30분 1만 원), 수상 자전거(4~10월 운영 / 30분 1만 원) 등을 빌릴 수 있다. ‘시흥시 스마트 관광 전자지도’ 앱을 이용하면 자전거 여행에 유용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스탬프 투어’ 메뉴를 터치하면 스탬프를 찍는 위치가 지도에 표시된다. 표시된 장소 주변에 가서 스탬프 표시를 터치하면 회색이 빨간색으로 변한다.
그린웨이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오이도로 이동했다. 시흥오이도박물관과 오이도선사유적공원, 빨간등대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2000년에 시작한 오이도 지표·시굴 조사 과정에서 패총과 신석기 유물, 통일신라 시대 주거지, 조선 시대 봉수대 등이 발견됐다. 이 조사를 바탕으로 2002년 오이도 주변이 시흥 오이도 유적(사적)으로 지정됐다. 시흥오이도박물관과 오이도선사유적공원은 오이도 유적에 자리한다.
시흥의 문화유산을 전시하는 시흥오이도박물관은 상설전시실과 어린이체험실로 구성된다. 3층 카페테리아에서 보는 바다 풍경이 멋지다. 오이도선사유적공원은 선사시대 유물을 관람하고 당시 생활을 체험하도록 꾸몄다. 전망대와 패총전시관을 운영 중이고, 선사체험마을에는 움집과 사냥터, 발굴 터 등 각종 선사시대 조형물을 설치했다.
빨간등대는 오이도의 상징과 같다. 한껏 멋을 부린 붉은색 외벽이 오이도를 찾은 여행객을 유혹한다. 저녁에는 빨간등대와 끝없이 이어지는 식당과 카페에서 나오는 불빛이 어우러져 장관이다.
여행정보
※ 위 정보는 2024년 3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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